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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ts (2016) 소리는 최대한 절제되어 있다. 가끔 나오는 대화는 웅얼거림으로써 이야기는 뭉개버리린다. 그나마의 대화가 멈춘 곳에선 소녀의 단조로운 하나, 둘, 셋 기합소리나 가쁜 들숨과 날숨으로 채워진다.소리가 제거됐다고 해서, 화면의 탄력이 줄어들었냐면 그것은 또 아니다. 복싱와 댄스를 배우는 소녀의 하루하루는 단조롭지만. 연습을 하며 반복되는 스텝과 다양한 각도의 훅들은 미세하게 틀리고, 확연하게 거칠어 져서 긴장감의 끈을 놓치 않는다. 농담같은 사건이 소녀들에게 시간차를 두고 연속적으로 일어나게 되면서, 처음엔 사건에 휘말리게 될까봐 두려워하던 소녀들 자신을 오히려 그 사건속으로 스스로 밀어넣게 되는 상황이 흥미롭다. "처음"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통과의례에 당연히 따라붙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부담감과 뿌듯함이 섞..
인생 수정 (조너선 프랜즌) 루시안 프로이트 / And the Bride Groom / 1993 그는 일을 곧 그만둔다고 했다.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그는 불안하게 유쾌했다. 나도 이번에는 선뜻 그러자고 했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얼 뜻하는 건지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체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있었다. 적당히, 적당한 선에서, 적당하게 끝낼 수 있다고., 그게 무엇이던지간에. 술을 물처럼 밥처럼 들이키는 사람앞에선, 어떤 말도 그 순도나 질량에 상관없이 여과를 통해 증발이 될것이다. 부끄러운 언행들도 기억저편에서 실낱같은 부끄러움 한점만 남긴채 세월속에 용해될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리고 그는 서로 앞다퉈 용기를 냈다. 손가락같은 잔에 채워진 수제맥주는 월요일 아침에 건네받는 농담처럼 우리를 멍하게 만들었..
Me and Earl and The dying girl (2015) 인간은 누구나 저 자신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현상들이 교차하는 지점, 단 한 번 뿐이고 아주 특별한,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고 특이한 한 지점이다. 단 한번만 그렇게 존재하는, 두 번 다시는 없는 지점이다.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는 소중하고, 영원하고, 거룩하며, 그래서 어쨌든 아직 살아서 자연의 의지를 충족시키는 인간은 누구라도 극히 주목할 만한 경이로운 존재인 것이다. 그 모든 인간 각자에게서 정신이 형상이 되고, 각자에게서 피조물이 고통받고, 각자에게서 구세주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서문 중
11/23/63 (스티븐 킹) 뜨겁다 못해 증발될것같던 여름이 채 오그라들기도 전에, 학기는 다시 시작이 되었다. 한 달 전부터 강의 계획서를 쓰면서 다가오는 날짜를 세기는 했지만, 막상 오늘 아침은 그저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했다. 3시 50분까지 뒤척이다가 4시 2분에 옷을 껴입고 4시 30분 차를 타기 위해 재촉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새벽이 어슴프레하게 빛을 뿜으며 기지개를 켜는 듯 했지만 곧 다시 어둠속으로 잠겼다. 겨우 바뀌기 시작한 계절의 숨결이 여전히 반쯤 감긴 눈을 비집고 들어온다. 3분전, 2분전, 1분전, 반대편 신호등 뒤로 천천히 다가오는 버스의 숫자가 눈부시다. 5003번 버스가 정류장에 서기 직전, 인력 시장의 불 하나가 딱하고 켜졌다. 여긴 작은 마을이잖나. 유머에 관한 한 기대치가 한참 낮아. 앞 못 ..
널 사랑하지않아 "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응. 나는 엄마 딸이니깐 할머니가 엄마한테 많이 주는게 좋지, 뭐"." 그래, 나도 느그 엄마가 내 혼자 자식이라서 많이 주고 싶은데. 그게 사람맘인데."" 응. 그런데?"" 근데, 아무리 너네 외삼촌이 양 아들이라고 해도, 그리고 자식 노릇을 못했다고 해도 그래도 자식이라고, 아들이라고 한평생 내가 마음을 줬다 아이가?, 그라니깐 지는 못했다고는 하지만, 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은 또 그렇지 않다 아이가? 너희 엄마가 왜 그걸 몰라주는지. 너희 엄마도 내 마음이 못했건 잘했건 내 아들이라고 , 내품에서 낳아 키우진 않았지만 내 마음이 이렇게 많이 간건 왜 몰라주노, 나는 똑같이 나눠주고싶다. 그래야지 맞지, 그라고도 지가 지 욕심이 지나치면 지는 그 돈 가지고도 얼마 못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