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다 못해 증발될것같던 여름이 채 오그라들기도 전에, 학기는 다시 시작이 되었다. 한 달 전부터 강의 계획서를 쓰면서 다가오는 날짜를 세기는 했지만, 막상 오늘 아침은 그저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했다. 3시 50분까지 뒤척이다가 4시 2분에 옷을 껴입고 4시 30분 차를 타기 위해 재촉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새벽이 어슴프레하게 빛을 뿜으며 기지개를 켜는 듯 했지만 곧 다시 어둠속으로 잠겼다. 겨우 바뀌기 시작한 계절의 숨결이 여전히 반쯤 감긴 눈을 비집고 들어온다. 3분전, 2분전, 1분전, 반대편 신호등 뒤로 천천히 다가오는 버스의 숫자가 눈부시다. 5003번 버스가 정류장에 서기 직전, 인력 시장의 불 하나가 딱하고 켜졌다.
여긴 작은 마을이잖나. 유머에 관한 한 기대치가 한참 낮아. 앞 못 보는 친구가 바나나껍질을 밟고 넘어지기만 해도 배꼽 빠지게 웃기다고 생각하거든. P.106
그랬다. 1학기엔 아이들의 머리도 심장도 무척이나 몰랑했고 투명했다. 어떤 것도 통과못하는 것이 없었고, 그들에겐 어떤 경이 롭지 않는 현실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작은 일에도 바보처럼 웃었고 큰 일에는 대범한, 20살이 되기 만을 기다렸던 성자들이었다. 옳고 그름의 가치는 순전하고 명쾌했으면 결과는 간결하게 받아들였었다. 잊고 있었던, 혹은 잊기를 강요당했던 당연한 덕목들이 세상살이를 오래 하신 어른들보다 이 아이들의 다듬어지지않는 원석같은 뇌에서 뿜어져 나와 정신차리라며 나에게 소리치던 순간들이 지금도 문득 문득 기억난다. 그게 불과 3개월전. 아무래도 이번 여름이 너무 길었고 너무 더웠던 것 같다. 아침부터 길다랗게 뻗어있는 해의 꼬라지때문에 눈 앞의 풍경은 복사열로 중심을 잃고 벌써부터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만약 3개월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스티븐 킹의 다른 소설부터 읽었을 것이다.
이 소설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게 제목인데, 왜냐하면 아직도 11/ 23/ 63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게으르고 심드렁하게 질질 끌다가 개학 기념으로 겨우 끝장을 덮었다. 이미 샤이닝, 미저리, 돌레레스 클레이븐, 쇼생크탈출 그리고 언더 더 돔같은 영상으로 경도된 독자의 눈과 귀에는 대가의 활자들은 너무 순진하고 고집스럽워 오히려 읽기가 거북했다. "과거 여행"을 "존 F 케네디"과의 연결고리는 도널드와 힐러리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2016년 대선쇼보단 덜 자극적이어서 재미도 반감되고. 회자가 많이 된 과거의 음모설일수록 신선도는 급격히 떨어지기 마련이어서, 로맨틱하다못해 애잔하기까지 하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샤이닝을 보고 작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하지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