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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교과서, 세상에 딴지걸다. (이완배)

파리에 꼭 올 이유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아예 파리엔 가지 말았어야했었다. 여름내내 관광객들이 파리의 길바닥을 점령했고 도시는 그에 맞서 시위라도 하듯 어딜가나 공사중이었다.  따가운 여름의 햇살이 도시를 끈적하게 녹이기전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지하철과 트램을 타러가는 사람들의 행렬과 함께 밤새 가라앉아있었던 먼지가 물안개처럼 서서히 피어올랐다. 12시간동안 철저하게 사생활을 즐긴 도시가 청소차의 물세례에 얼굴을 씻고 손님을 맞기위해 화장하는 이 시간을 나는 원래 좋아했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낯익은 팟캐스터들을 차례로 플레이리스트에 배치했다. 펄펄 끓는 온도의 한국 이야기는 귓속으로 들어와 자리도 못잡고 귓등 어디쯤엔가에서 뱅뱅 돌다가 식어버리고 멀미 혹은 배고픔과 함께 사라져갔다. 생각해보면 아예 그때 음악을 들을 걸 그랬단 생각이 든다. 요즘의 팟캐스트 방송들은 공부각이 나와 줘야 할 만큼 알찬 내용들이 많은데 그땐 그저 숙취같은 무료함을 잊을 정도로만 아군의 목소리가 필요했었다. 한국의 역사는, 정치는, 경제는, 위대한 책의 저자들은 정성스런 잡소리가 되어 매혹의 빛을 잃어버린 세상과 함께 이리저리 쓸려다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트노롬의 똑딱거리는 박자에 맞춘듯한 이완배기자의 간명한 말투는 기억이 난다.    


5시 반이 되기도 전 벌써 어둑해진 저녁을 끌어앉으며 학교는 어둠속에서 서서히 주저앉고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학교 버스를 탔다. 몸을 자리에 구겨넣는 순가, 긴 한숨과 함께 눈이 자동반사적으로 감겼다. 버스안의 공기는 앞으로 정류장에 정차하기전 15분동안 내가 기절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뎁혀져 있었고 적당하게 탁했다. 사실 오늘은 노동의 강도는 제일 약한 날이지만, 신경을 잔뜩 세워 5시간을 꼿꼿히 서서 보낸터라 안과 밖이 너덜너덜 해진것 같았다. 그러나, 기차를 타기전 5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무려 5 시간이나. 이제 어디로 가서 시간을 보낼까, 남은 시간동안 무얼 할까, 무엇보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질 낮은 15분간의 수면을 기꺼이 포기하고 시체같은 이 팔다리를 움직여 재미있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소중한 5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례적으로 집엔 언제쯤 도착 할것같단 전화를 걸고 이어 영화 시간표를 확인했다. 열린 차문으로 불쑥 비집고 들어온 정류장의 칼바람이 겨울의 완벽한 귀환을 알리는 것 같았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오늘자로 할당된 팟 캐스트방송들을 세팅해 플레이를 눌렀다. 이완배기자가 트럼프의 미국대통령 당선으로 인해 더욱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실체가 있는 딴지를 걸되 서술은 수수하고, 의문은 적재적소에 던져지고 떡밥은 명쾌하게 수거되며, 결론은 부드럽지만 완곡하게 마무리되는 그의 스토리텔링 기술은 최근 읽은 그의 책에서도 음성지원이 될 정도로 일관성이 있었다. 


재미있고 의미있고 알차다. 어려운 경제학 용어도 쉽게 풀이가 되어있고 경제 상식에 우매하거나 혹은 호도하는 나를 위시한 어른들부터 경제라는 것이 꼭 돈에 찍힌 숫자의 의미만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씩 알아나가는 아이들의 눈높이에도 맞춤 맞는 교과서같은 책이다. 누구 말대로 그의 노련한 통찰과 보편적인 휴머니즘에 기반을 둔 경제 이념을 듣고 읽고 있다보면 이완배 기자는 팟빵에서 찾아낸 최고의 보물이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